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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안개', '몽땅 내 사랑' 가수 현미가 4월 4일 오전 자택에서 별세한 것을 팬클럽 회장 김 모 씨의 발견으로 경찰에 신고되었다. 60여 년간 두터운 우정을 쌓았던 엄앵란은 "전달까지 통화해... 팔이 떨어져 나간 슬픔"이라고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현미의 도와드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귀국하면 확정될 예정입니다

    가수 현미, 자택에서 별세 향년 85세

    미 팔 군서 가수 생활 시작 해서, 남편 이봉조 작곡가와 히트곡 다수 배출

    가수 현미(본명 김명선)가 4월 4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5세

    경찰과 가요계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37분께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 김 씨가 쓰러져 있는 것을 팬클럽 회장 김 모 씨(73세)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현미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다

     

    현미의 가수 생활, 히트곡

    현미의 도와드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귀국하면 확정될 예정입니다

    현미는 1938년 평양에서 태어나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고향인 평양에서 거주했다

    1.4 후퇴가 있을 당시 평안남도 강동에 있는 외가로 피난을 갔다

    이 과정에서 어린 두 동생과 헤어졌다가 60여 년 지난 뒤에야 동생들과 평양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현미는 이 같은 아픈 경험을 계기로 지난 2020년에는 이산가족 고향체험 VR 가상현실 콘텐츠 제작에 참여한 바 있다

    그녀는 우리 나이로 스무 살 때인 1957년 그 당시 음악인들이 으레 그랬던 것처럼 미 8 군부대를 통해 연애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칼춤 무용수로 무대에 올랐지만 일정을 펑크 낸 어느 가수의 대타로 마이크를 잡으면서 가수가 됐다

    현미는 이때부터 그를 눈여겨본 작곡가 고 이봉조와 삼 년간 연애 한 뒤 결혼했다

    현미는 1962년 발표한 '밤안개'로 큰 인기를 누렸고, 남편 이봉조와 콤비를 이뤄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이 없이', '몽땅 내 사랑', '무작정 좋았어요' 등 연이어 히트곡을 발표했다

    그는 2007년 데뷔 50주년을 맞아 연 기자회견에서 "80년이든 90년이든 이가 확 빠질 때까지 노래할 것"이라며 "은퇴는 목소리가 안 나오게 되면 할 것이다. 멋지고 따뜻하게 사라지는 게 참모습"이라고 음악 활동에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경찰은 고인의 지병 여부와 신고자인 팬클럽 회장과 유족 등을 조사해 정확한 사인을 규명할 계획이다

    빈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현미의 아들이 로스앤젤레스에서 귀국하면 확정될 예정입니다

     

    60년 우정 엄앵란 " 현미, 전날까지 통화해.... 팔이 떨어져 나간 슬픔"

    현미의 도와드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귀국하면 확정될 예정입니다


    엄앵란은 "현미, 별세 전날까지 통화해... 팔이 떨어져 나간 슬픔"이라고 했다.

    엄앵란은 "속 깊은 아픔 나눴던 60년 우정 언제나 화 통했던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현미랑 나랑은 앉으나 서나, 낮이건 밤이건 어디를 가도 같이 다녔어요. 그랬는데 (별세 소식을 접하니까) 팔이 떨어진 기분이에요"

    배우 엄앵란(본명 엄인기 87세)은 "나는 이제 친구가 없다"라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현미와 엄앵란은 깊은 우정을 나눈 사이로 연예계에 유명했다

    엄앵란은 현미가 별세하기 전날까지 매일 통화하며 서로 확인을 안부 확인했다며 전했다

    엄앵란은 "둘이 20대일 때 한 행사장에서 처음 만났다"며 "현미가 '아이고 엄앵란 씨 이름만 들었지 얼굴은 처음 뵙네요' 하길래 '내가 언니 할게요'라고 말했다"라고 첫 만남을 돌아봤다

    둘은 우여곡절이 많았던 연예계 생활과 가정생활을 보내며 약 60여 간 두터운 우정을 쌓았다

    엄앵란은 화통하고 털털한 성격의 현미를 보고 있으면 어느덧 자기도 깊은 속내를 드러내 나누곤 했다고 전했다

    엄앵란은 "허물없이 다 털어놓았다"며 "슬프면 슬픈 대로, 사람들이 미우면 미운대로 서방 욕도 서로 하고 그랬다"라고 말했다

    현미가 남편 작곡가 고 이봉조와 다툴 적에 마음을 위로하려 들렀던 곳도 엄앵란 집이었다

    "우리가 같은 아파트를 살았어요. 현미집이나 우리 집이나 서로 자기 집처럼 오고 갔죠. 그렇게 재미있게 살았는데"

     

    우리 가슴속의 현미를 보내며

    현미는 1957년 미 8 군부대를 통해 연애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재즈풍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밤안개',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없이' 등 연이어 히트곡을 발매하며 1960년대 가요계를 선도했다

    그는 23년 4월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엄앵란은 "현미가 아직도 얼음 속에 들어앉았다더라. 만사가 싫고 슬프다"며 울음을 삼켰다